이 표현은 주로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주고 미안하다고 말할 때나 사과할 때의 답변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아주 자주 쓰인다.
내가 프랑스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11만 킬로미터를 달린 중고차를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만원을 주고 샀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자동차를 굴리느냐 할 수도 있지만 보통 한 번 장을 보러 가면 일주일에서 이주일치 생활할 수 있는 양의 물건들을 사게 된다. 동네 가게에서 사는 것 보다 큰 마켓에서 장을 보면 경제적으로 꽤 이익을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큰 마켓들이 시내에서 떨어져 있고 또 그 물건을 들고 집에 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학생들이 중고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 결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유학 초기 지방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나는 파리에 있는 대학원과 집을 구하기 위해 서투른 운전 실력으로 차를 몰고 파리에 왔다.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파리 역시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는데 길가에 주차를 시켜놓은 후 일을 보고 차를 빼려고 할 때였다. 후진 기어를 넣고 뒤를 살피며 엑셀을 밟았는데 이게 웬걸 차가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초보 운전자 티를 내려고 그랬는지 기어를 잘 못 넣은 것이었다. 내 앞에는 럭셔리의 대명사인 벤츠가 있었고 나는 그만 벤츠를 쾅하고 박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앞차로 갔는데 그 차에는 잘 차려 입은 중년 여인이 타고 있었다. 차 밖으로 나온 그녀는 내가 박은 자신의 차 범퍼를 살펴보았는데 그 범퍼에 흠집이 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흡혈귀처럼 창백한 얼굴로 어찌할 줄 모르면서 Exusez-moi mille fois ! (엑쓰뀌제-무와 밀 푸와! 천 번 잘못했어요!)를 연발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그 여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Ce n'est pas grave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혹시 그 여인이 범퍼에 흠집을 보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 손가락으로 그 부위를 가리켰다. 그런데 그 여인은 봤다고 말을 하고는 “범퍼라는 것이 원래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것인데 나를 별 문제없이 보호했으니 기능을 잘 한 것이고 문제될 것이 없으니까 그냥 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차 범퍼 값을 지불하려면 내 애마(?)를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혹시 그 여인이 마음이 바뀔까봐 꽁지가 빠져라 차를 빼고 집으로 향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은 특히 차에 대한 애착이 심한 경향이 있다. 말로는 차가 사람의 편리를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침에 나와 보니 멀쩡한 차에 흠집이 나 있다면 그날 하루 기분을 잡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그 여인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쿨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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